국어국문학과

시 창작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공부하는노년 2025. 3. 27.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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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상징과 함축, 그리고 여백의 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인은 종종 눈앞에 드러난 사물이나 현상을 묘사하면서도, 그 이면에 감춰진 의미를 암시함으로써 독자가 상상하고 사유하도록 유도합니다.

1. 보이는 것: 감각과 이미지의 세계

시는 본질적으로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질감, 귀로 들리는 소리,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과 같은 감각적 요소들은 시적 표현의 기본적인 토대가 됩니다. 예를 들어,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시인은 ‘흰 바람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벽이 아니라 내면의 쓸쓸함과 상실감을 암시하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예시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린다.
그 그림자가 벽에 스며든다.
나는 보았다.
그러나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의 짧은 시적 표현에서 ‘흔들리는 나뭇잎’과 ‘그림자’는 명확히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그림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떤 감정을 감지하게 됩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보이는 것)를 통해 시인은 내면적 정서나 철학적 사유(보이지 않는 것)를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2. 보이지 않는 것: 함축과 여백의 미

시는 단순히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환기하고 암시하는 예술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시의 언어 속에서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 감춰진 감정과 사유
    많은 시들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사물이나 풍경 속에 녹여내는 방식을 취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진달래꽃’을 뿌려 놓고 떠나는 연인을 배웅하는 행위는 단순한 동작을 넘어 슬픔과 체념의 정서를 함축합니다. 독자는 ‘진달래꽃’이라는 보이는 사물 속에서, 이별의 아픔이라는 보이지 않는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 부재(不在)의 표현
    어떤 존재를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재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도 있습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는 ‘그리운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이름은 끝내 명확히 제시되지 않습니다. 독자는 시인이 말하는 ‘그리운 이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 빈자리를 통해 더욱 깊은 그리움을 체감하게 됩니다.

예시
빈 의자가 놓여 있다.
누군가 막 떠난 듯이.
아직 차가운 찻잔이 식어가고 있다.

여기서 ‘빈 의자’와 ‘차가운 찻잔’은 보이는 것이지만, 독자는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와 그가 남긴 공허한 흔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재의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3.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조화

좋은 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조화를 이루며 상호작용하는 작품입니다. 지나치게 명시적인 시는 감상의 여지를 줄이고, 너무 모호한 시는 독자가 공감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환기하는 것입니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도시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단순히 도시의 외형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암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물리적으로 보이는 세상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도, 그 이면에 깃든 정서와 철학을 담아야 합니다.

4. 시 창작 실습: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활용하기

다음과 같은 연습을 통해 시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탐구해 볼 수 있습니다.

연습 1: 한 장면을 묘사하고 감정을 숨겨보기

  • 바람 부는 들판을 묘사하되, ‘외로움’이나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 감정을 담아보세요.

연습 2: 사물로 감정 표현하기

  • ‘이별’을 표현하고 싶다면, 직접적으로 ‘이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물을 활용해 보세요. 예를 들면, ‘저녁 무렵 꺼져가는 등불’, ‘한쪽만 남은 신발’과 같은 이미지가 이별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연습 3: 부재를 통해 존재 드러내기

  • 누군가 떠난 후의 공간을 묘사하되,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떠났는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고 남겨진 사물이나 풍경으로 암시해 보세요.

5. 결론: 시적 언어의 힘

시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상상하게 만들고,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환기합니다. 시인은 보이는 것(구체적인 이미지)과 보이지 않는 것(감정과 사유)의 균형을 통해 언어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는 존재입니다.

 

좋은 시는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기고, 사물과 장면을 통해 감정을 환기하는 힘을 가집니다.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독자가 상상의 공간을 탐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 창작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