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오유권의 처절한 투병기(1983.05 건강생활)
오유권의 처절한 투병기
오유권의 처절한 투병기가 중앙도서관 자료실에 있어 살폈습니다. 그는 전남 나주군 영산포읍에서 태어나 41세까지 영산포에서 생활하다가 수도권으로 옮겼습니다. 당시 자녀 교육을 위한 이촌향도였네요. 그는 소설만 써서 생존한 몇 안 되는 작가입니다. 어려운 가정 여건에서 1980년 뇌졸중으로 몸 한쪽을 못쓰게 됩니다.

'1983년 건강생활 5월호'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여기수'의 작가가 육필로 쓴 처절한 감동투병기"라는 제목으로 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물론 국립중앙도서관과 협약이 맺어진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왼쪽을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그의 나이 53세. 한창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에 빚어진 일이라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아내가 없는 처지에서 소설만 써 생계를 유지하는 그는 병고와 싸우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병마와 싸우면서 발표한 그의 작품은 1982년에는 무려 16편에 달합니다. 그의 투지는 대단합니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독학으로 공부해서 문단에 등단한 뚝심, 그리고 1961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천부적인 문학적 재능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힘을 발합니다.

그의 고뇌어린 투병기를 소개할 기회도 올 것입니다. 지금은 기술적인 문제로 올리지는 못합니다만, 나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활동하는 '등대독서회'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오유권문학관'에서 보여 드릴 것입니다.
디지털로 만드는 오유권문학관
소설가 오유권은 영산포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학교 급사와 우체국 사환을 거치면서 독학으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지금이라면 학벌을 초월해서 강단이나 강연장에 설 수도 있었겠으나, 당시는 그럴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꾸준하게 작품을 써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자녀들 교육을 위해 고향을 떠난 뒤로도 항상 경제적 궁핍을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뇌졸중으로 건강까지 잃게 된 것입니다.
그는 배경이 약해서인지 고향에서도 응분의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후배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조성한 기념비가 전부였습니다. 한적한 나주 한수제 아래, 사람들이 뜸한 곳에 외롭게 서있는 기념비는 오유권의 생전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는 외롭게 글을 썼고 외로운 삶을 살다 1999년 타관에서 사망합니다.

2028년이면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의 소설은 농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도 위대하지만 그의 삶은 더 위대합니다.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고, 문학계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진정 어린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런 그의 글과 삶이 고향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그의 문학관을 온라인에 건립하고자 합니다.
시작은 빈약하나 그 끝은 창대할 것을 기대합니다.
'오유권문학관' 주소는 https://oukwon.kr 입니다. 아직은 버그가 많을 것입니다. 오유권의 문학과 삶이 우리 후배들에게 따뜻한 빛이 되도록 성공적인 온라인 문학관으로 성장할 것입니다.